
옛날 공책에 담긴 그림들(2010년)
2005년. 지금으로부터 벌써 20년 전. 홍대 플리마켓은 요즘과 비교할 수 없었다. 주말이면 늘 북적북적. 가족과 함께,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한 사람들로 늘 기분 좋은 설레임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공책을 발견했고, 생전 뭘 사달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남편은 흔쾌히 그 공책을 선물해줬다.
요즘은 아무데나 ‘수제, 핸드메이드’라는 말을 붙이지만, 이건 정말 진짜 수제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두꺼운 크라프트지로 만든 표지에 속지와 그 사이 살짝 두꺼운 종이. 모서리 마감은 놋쇠장식, 책등은 헝겊으로 해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 헤지고 닳은 것 없이 멀쩡하다.
오늘은 이 공책에 그렸던 그린 몇점을 소개한다. 사실 너무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5년을 묵히다 2010년에서 들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일터에서 잠깐잠깐 틈이 날 때면 찰나를 이용해 끄적였다.
작품이라기 보다는 사실 낙서에 가까운 그림들.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나로선 아까운 그림들. 그 그림을 선보인다.

대나무 밭에서 죽순을 먹고 있는 팬더를 그렸다. 왜 팬더를 그렸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그날 아이들 그림 주제가 팬더였는지도 모르겠다. 등에 빨간 배낭을 메고 있는 걸 보면, 소풍을 나온 걸까? 그림 아래에 ‘PANDA HARU’라고 써놓은 걸 보면, 이때도 ‘Haru’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보다. ㅎㅎㅎ

2010. 6. 15.
이날은 새를 그렸다.
보통은 새가 자연에 있는데, 이 그림은 새 안에 자연이 들어와 있다.
나중에 심규선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라는 뮤직 비디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그림이 생각나서.
그리곤 에피톤 프로젝트의 팬이 되었다.

2010. 7. 6.
이 무렵, Fika란 말을 알게 되었다.
커피라는 뜻의 Kaffe 앞 뒤 음절 순서를 바꿔 만든 말로, 티타임, 커피타임을 가리킨다.
덴마크의 휘게, 스웨덴의 피카. 북유럽 사람들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 바쁜 중에도 일부러 시간을 빼놓는 걸까.
어쨌든 ‘더울수록 바쁠수록 Fika’라고 적은 걸 보면, 그때 덥기도 무척 더웠고 여유도 그리웠던 것 같다.

7. 19. 이날 아마 초복이었나보다.
밖에 나와서도 ‘엄마 오늘 복날인데 우리 뭐 먹어요?’하는 아이들이 생각났나.
지금이라고 일 하는 엄마 마음이 다를까.

그 다음날. 너무 더웠나?
‘복날은 견뎠는데… 폭염이라죠? 생생하게 살아남자구요!’ 이렇게 써 놨네.
2010년부터 이상기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 기억으론 1994년도 엄청난 더위였고, 2009년도 더웠던 것 같지만.
공책을 넘겨보면,
이렇게 2010년 그림은 끝나고 그 다음은 2023년으로 뛰어넘는다.
그 사이에도 뭔가 그린 건 있지만, 마음에 영 들지 않았는지 잘라낸 흔적이 있다.
음… 이거보다 더 못 그린 그림이 있단 말이야? ㅎㅎㅎ;;;
다음엔 2023, 2024년 그림을 소개할 예정.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