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글을 쓰던 그 시간

이른 아침, 글을 쓰던 그 시간

이른 아침, 글을 쓰던 그 시간

이젠 바뀌어버린 그 루틴을 돌아보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는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오후에는 미술학원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오직 그때뿐이었거든요.

지금은 아이들도 직장인이 되었고, 저도 은퇴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되었지요. 그런데도 문득문득 그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던,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 혼자 누리는 고요

이른 아침은 고요합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정숙한 시간. 그 고요함은 집중과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그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갓 깨어난 머리는 멍하고 흐립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깨우기 위한 작은 리추얼(ritual)을 만들었죠.

  • 세수를 하고, 식사 준비 상태를 체크하고
  • 책상에 앉아 잠깐 묵상을 하고
  • 성경을 필사합니다

공책을 반으로 접어 왼쪽에는 한글 성경, 오른쪽에는 영어 성경을 천천히 따라 적었어요. 읽기만 할 땐 그냥 스쳐 지나가던 단어와 내용들이, 또박또박 적어내려가는 동안 하나하나 또렷이 다가와 곱씹게 되고, 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차 한 잔과 글쓰기, 나만의 시작

필사를 마치면 물을 끓입니다. 차를 마시든, 커피를 마시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잔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아요. 그땐 나만의 책상도 없어 식탁에 앉아야 했지만, 혼자 쓰는 노트북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그리고 글을 씁니다.

무조건 15분 이상. 주제가 없어도, 내용이 엉성해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쓰는 것 자체가 목표였으니까요. 처음에는 별 의미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글자가 글자를 불러와 조금씩 글이 길어지고, 생각이 또렷해지고, 문장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아침이어야 했을까

글을 쓰기 위해선 집중이 필요하죠. 그리고 저에게 집중이 가능한 시간은 오직 이른 아침뿐이었어요.

책을 읽고, 메일을 확인하고, 아이들 수업 준비를 하는 건 여럿이 있을 때도 할 수 있었지만, 글쓰기는 혼자여야만 가능했습니다.

또한 제일 맑은 정신도 아침에 찾아왔습니다. 밤 9시만 되어도 졸음이 오기 시작하고, 10시가 지나면 집중력이 크게 떨어졌거든요. 반면 아침에는 수학 문제도, 복잡한 생각도 순식간에 풀리던 기억이 납니다. 제게 글쓰기는 언제나 아침에 잘 되었습니다. 아마 전 정말 아침형 인간이었나 봐요.

몸과 마음을 깨우는 나만의 루틴

  • 묵상
  • 성경 필사
  • 차 마시기
  • 글쓰기

이 리추얼은 단순히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글을 쓸 수 있는 상태’로 천천히 깨워주는 웜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했던 이 행동들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습관이 되자 그건 곧 ‘내가 되어버리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더 이상 5시 반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삶입니다. 시간은 더 많아졌고, 환경은 훨씬 여유로워졌지만… 그때의 고요함, 집중, 그 긴장감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이 종종 그립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던 그 습관, 아무도 없는 시간에 세상과 나 사이의 문을 열던 그 기분.

마무리하며

10년 동안 그렇게 글을 쓴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아침 글쓰기는 그저 하루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내 삶의 중심을 붙들어주는 힘이었고, 내가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전히 글을 씁니다. 비록 시간은 달라지고, 내 책장과 책상이 새겼지만, 마음만큼은 그때처럼 고요하게.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 글을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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