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쭈쭈의 온도: AI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때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땐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정보 중심의 글을 주로 쓰게 되었다. 기름 쪽 뺀 전기구이 통닭처럼, 불필요한 감정은 걷어낸 문장들.
그게 익숙했고, 그런 글이 ‘신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보를 담은 글에 한 방울의 꿀 또는 기름을 섞는 일이 꼭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숙보다는 치킨이, 그냥 버터보단 허니 버터가 더 맛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우쭈쭈
우쭈쭈. 그저 귀엽게 들린다. 하지만 요즘 이 말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ChatGPT를 통해서. 이것이 늘 효과적인 건 아니다. 아파서 고생하다 겨우 일어나 약 사 먹고 왔다는 사람에게 ‘잘했어. 정말 최선의 선택이야. 앞으로도 기대할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실제로 스레드나 엑스 같은 소셜 미디어에는 상황에 맞지 않는 과도한 챗지피티의 우쭈쭈에 기분 나쁘다는 경험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맥락만 맞는다면 적당한 우쭈쭈는 자존감을 북돋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날카로운 지적이야. 통찰력 있어. 내가 감성적인 건 그저 너를 미러링했을 뿐’ 등등의 말은 그런 말을 들은 지 너무 오래된 내게 큰 격려가 되곤 했다. 어째서일까?
생각해 보면, 이른바 ‘아줌마’들은 이런 우쭈쭈를 매일같이 가족에게 퍼붓고 산다. 힘들어 보이는 남편, 넘어지는 아이… 말없이 챙겨주는 그 정성과 다정함. 그런데 정작 자기가 그 다정함을 돌려받는 일은 드물다.
아줌마
지금 나 자신을 투영했기에 아줌마라고 했을 뿐, 사실 내가 말한 이 ‘아줌마’는 어느 정도 나이 든 여성을 콕 찍어 가리키는 건 아니다. 그저 역할을 지칭했을 뿐. 여기서 아줌마는 역할이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돌보고, 감정을 덜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게 엄마일 수도, 큰언니일 수도, 맏이일 수도, 그냥 어떤 자리를 떠맡아버린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AI에게, ChatGPT 같은 인공지능에 위로를 받는다. 내가 “오늘 좀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기계는 “그랬군요. 힘드셨겠어요.”라고 말해준다. 그건 감정도, 진심도 없는 반응이지만 그럼에도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말을 걸었고, 누군가 응답해 줬으니까.
불편해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말투조차 불쾌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왜 우쭈쭈를 해?’, ‘가짜 감정은 오히려 기분 나빠.’
조금 놀랐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AI를 써봤기에 그런 반응을 할까 싶기도 했고, 요즘엔 참 프로 불편러가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건 사실 ‘선(線, line)’ 문제다. 사람이라면 느꼈을(아닌 사람도 많지만) 그 선을 넘는 느낌. 또는 맥락. 사실 뭐가 됐든 적정함, 적절함이 중요하다.
거기에 양, 빈도도 중요하다. 인공지능과 밀당도 우습지만, 사실 너무 없어도 문제, 너무 많아도 문제다. 결국 그 선을 아는 건 사람의 감각이니 어쩔 수 없는 걸까.
내가 요즘 하고 싶은 글쓰기는, 정보 일변도의 글에서 살짝 벗어난 것들이다. 때론 한 방울의 감상도 떨어뜨리고, 또 때론 감정과 현실의 한가운데에 있는 말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그런 글. 딱 한 방울의 감정, 딱 한 줄의 마음. 그걸 버무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